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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령순절록
 조영래    | 2011·01·14 14:22 | HIT : 13,331 | VOTE : 120

서명 : 쌍령순절록(雙嶺殉節錄)

원문 : 원문보기

내용

 병자호란 당시 쌍령(雙嶺)에서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의사(義士)들에 대한 기록이다. 병자년 쌍령 전투의 전사자를 기록한 것이어서 『병자순절록』(丙子殉節錄)이라고도 부른다. 단권으로 『습유』(拾遺), 『실기』(實紀), 『부록』(附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습유』에는 쌍령전투의 장군 윤충우(尹忠祐)가 전쟁 중 『아내 염씨(廉氏)에게 보낸 편지』(寄夫人廉氏書)와 부장 신수(申樹)가 쓴 제문 등이 실려 있다. 윤충우는 1621년 무과급제 하여 훈련원 첨정에 올랐으나 바로 사직하고 귀향하였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나라의 부름을 받고 쌍령(雙嶺) 전투에 임하였다. 그는 『아내 염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적세가 매우 시급하니 분명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오. 시체인들 이 전쟁터에서 어찌 찾겠소. 이 편지를 보낸 날이 내가 죽은 날이라 여기시오. 아들이 눈에 선하니 모자가 서로 의지하여 산다면 다행이겠소.”라고 마지막 말을 전하여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신수가 쓴 제문에서는 “윤공께서는 선봉장으로 병졸 100여명을 이끌고 적진으로 진격한 후 소식을 알 수 없다.”고 쓰고 있다. 또 『실기』에는 『상렬사상량문』(尙烈祠上樑文)과 『상렬사봉안문』(尙烈祠奉安文), 청송 열사의 사당인 국계사(菊溪社)를 중수하며 지은 『국계사중수기』(菊溪社重修記) 등이 실려 있다. 서문은 이휘녕(李彙寧)이 썼다. 기탁자 : 경주정씨 양경공파 청송종중 연대 : 1678년 제작

▶윤충우

 성명 : 윤충우(尹忠祐) , 1587년 ~ 1637년

 본관 : 파평(坡平)

 호 : 쌍령(雙領)

 출생지 : 금연리 국계마을(金淵里 菊溪) 現 청송군 청송읍 금곡3리

 출신지 : 금연리 국계마을(金淵里 菊溪)

 분묘지 : 청송군 청송읍 금곡 3리 산 10번지

 입사경로 : 광해군 13년 무과 급제

 외관직 : 부사과(副司果), 훈련원 첨정(訓練院 僉正)

▶ 생애이야기

 윤충우(尹忠祐, 1587~1637)는 파평윤씨 시조인 윤신달(尹辛達)의 26세손으로, 호는 쌍령(雙領)이다. 윤충우는 어렸을 적부터 총명하여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글 읽기를 좋아하여 15세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능히 읽고 글짓기도 뛰어났다고 한다. 성년이 되어서는 기골이 장대하고 늠름한 청년이 되었다. 어느날 그는 대장부가 어찌 집안에서 글귀나 짓고 바둑이나 두며 소일하며 살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하고는, 그때부터 말타기와 활쏘기 등의 무예를 익히는 데 열중하게 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하여 관군이 되었다. 그는 좌위에 소속되어 부사과(副司果)의 직책을 맡았다. 그 후 훈련원 첨정(訓練院 僉正, 종 4품 무관)이 되어 일을 하다가, 1634(인조 12)에 퇴역하여 고향인 청송으로 돌아왔다.

 1636년(인조 14) 청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 오자, 윤충우는 집안사람들을 모아놓고 “사내대장부는 살아서는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죽어서는 조국의 수호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는 무장을 갖추어 출전하였다. 며칠 뒤 그의 애마와 유서만이 돌아왔다.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었다. “적의 세력이 크기 때문에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겠소. 비록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들 어찌 전쟁터에서 내 시체를 찾으리오. 이 글을 받아보는 날을 나의 제삿날로 정하시오. 아들이 눈앞에 선하오. 난리 중에도 모자가 헤어짐 없이 서로 의지하여 잘살기를 바랄 뿐이오.” 집안에서는 윤충우의 의관으로 장사를 지냈다.

 그 묘는 애마 비룡의 묘지와 함께 청송군 청송읍 금곡 3리 산 10번지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1808년(순조 8)에 조정에서 명을 내려, 고을의 부사(府使)로 하여금 윤충우의 충의정신(忠義精神)을 기리는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명을 받은 부사는 마을 뒷산 기슭에 사당을 짓고 이름을 ‘상렬사’(尙烈祠)라고 하였다.

 상렬사는 100여 년간 춘추로 제사를 지내다가, 일제시대 식민지 정책으로 인하여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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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26 06:56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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